서울 디자인 올림픽 참관기. non-fiction


    디자인 올림픽을 다녀왔습니다. 집이 종합운동장 근처라 요 몇 주동안 제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해버린 디자인 올림픽입니다... 정말.. 더럽게 시끄럽거든요. 디자인 디자인 하면서 왠 가수들을 그렇게 불러대는지 창문만 열면 이 아파트 저 아파트 거치느라 변질되고 증폭된 소음들이 집을 쩌렁쩌렁 울립디다. 게다가 지하철역엔 사람들이 왜 그리도 바글바글한지.. 매일매일 야구경기가 열리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제가 디자인 올림픽을 처음 간건 10월 8일, 그러니까 컨퍼런스 개막 하루 전날 입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상당히 궁금했고.. 아무래도 집 앞에서 열리는 큰 행사이다보니, 텃세도 부릴겸 해서요...

    요거이 일단은 가장 기대되면서도 염려스러웠던 부분이었는데요. 김수근 선생의 걸작에 플라스틱병들을 매달았습니다. 상당히 조잡하고, 키치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나 그렇군요. 이건뭐.. 아무튼, 이 때는 스텝분들이 병들을 열심히 달고 계시더군요(확 뜯어버리고 싶었지만) 저거 한 줄 한 줄 다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멀리서 보면 상당히 독특하고 재밌습니다. 

    저희 학교에서도 어떤 분들이 빨간색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 수십 개를 박물관 외벽에 걸어 놓으셨는데요. 무슨 생각인지 몇 달 째 떼어내질 않네요. 개인적으로 플라스틱 정말 싫습니다. 특히 건물 외벽에 플라스틱 쪼가리를 단다든가 하는 사람들 이해가 잘 안가네요. 


    그리고 바로 오늘, 디자인 올림픽을 다시 찾았습니다. 중간고사 보랴, 설계하랴, 덜덜덜 한 시간들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행사가 끝나려 하고 있더군요. 일요일이라 사람이 굉장히 많을 것 같았지만 일단은 부랴부랴 집을 나섰습니다. 주경기장 앞쪽에 도착하니 볼런티어 분들이 최적화된 동선을 설명해주시고 계시더군요. 저는 그렇게 계획적으로 구경하는 걸 싫어하는데다 딱히 그럴듯한 계획도 없어서 그냥 갔습니다. 근데.. 나중에 굉장히 후회했습니다.

    아무튼, 경기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곤 벙 쩌버렸죠.
    이건 뭐.. 이럴꺼면 그냥 코엑스에서 하지.. 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습니다.
일단 그러려니 하고(우리 시장님이 그렇지뭐) 열심히 기다려서 옆에 있는 가구조물에 들어갔는데요. 이게 특이하게 생겨서 뭔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아.. 아무것도 없어.. ㄷㄷㄷㅜㅜ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투덭투덜 거리시더군요..
마음을 추스리고 일단은 길을 돌아돌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하 아주머니랑 패트릭 슈마허(이 분은 누구?) 특별전이라도 봐야죠.


    그런데, 주된 전시물은 안에 다 있더군요(그래도 거의 다 기업전시).. 제 정보부족을 탓할뿐입니다. 좀 알고 왔으면 바로 안으로 들어갔을텐데 말이죠.(이 사람들이 관람동선을 이 따위로 짜놨어 지도도 졸라 헷갈리네

    건물 내부에는 Design is Air라는(미디어 아트를 잔뜩 모아놓아 디자인 올림픽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전시와 서울디자인의 현재, 미래.... 젊은 디자이너들의 간이 숍들(아트숍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것들.. 숍의 규모도 너무 작고, 숍 각자의 개성이 전혀 없어서 마치 소꿉놀이 시장처럼 되어버렸네요.. 거기서 하루종일 앉아서 관람객 구경하시는 분들 안습이더군요.), 기업 홍보 부스들, 자하특별전... 등등이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론 '서울디자인의 현재'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건물 외부에서 생겼던 짜증을 확 몰아내 줄 정도였어요. 구체적으로 몇 개 나열해보자면..
    이건 '콘크리트 유토피아'라고, 서울의 아파트 디자인에 관한 전시였는데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1930년에 지어진 충정 아파트, 삼각형 중정이 있는 스카이아파트(이건 꽤 유명하죠?)등등.. 보통 아파트하면 부정적인 생각만 떠오르는데 이 전시를 보니 아파트가 좋든 싫든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답니다. 특히 설명문에서 읽은 '현대 한국 중산층의 표준적인 주거 형태인 아파트'..라는 표현이 잊혀지질 않네요. 부자아저씨 아줌마들 자기 집도 지으면서 좀 고상하게 살아보자구요. (그래야 건축가들도 돈을 벌지

   이건 '원동에서 원서동까지'.. 라는 전시인데, 제작자가 그 부근을 돌아다니며 본 건축 요소들을 가지고 스토리를 짜낸겁니다. 예를 들면, 건축업자들이 빌라와 빌라 사이를 딱딱 붙여 짓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아이의 담력을 키워주기 위해 어두운 공간 만들기 경쟁이 붙었다. 이제는 법적으로 규제까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이에 나무를 심는등 어두운 공간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와 같은 것이죠.. 재미있습니다.

    대충 다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가장 기대했던 자하하디드 특별전에 갔습니다.
    흠.. 사실 좀 실망했습니다. 저는 정말 기대를 많이 하고 갔거든요.. 부스 자체도 아마 자하하디드가 설계했겠거니 했고, 단순히 모형뿐 아니라, 자하하디드의 면면을 느낄 수 있는 전시를 기대했습니다. 입장료로 9000원이나 낼 때, 제 기대는 더욱 증폭되어 정말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자하 아주머니의 모형들을 모아 놓은 정도..;;; 이 모델들이 가치 있는 모델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뭐.. 유동성을 나타내기 위한 곡선들.. 대단하죠.. 그럴듯 하죠.. 게다가 이 모델들은 아마 자하 아주머니 공방에서 직접 가져온 것들 인듯합니다.

    하지만... 98프로 정도 부족한 이 느낌.. 디자인 올림픽 전체를 시민의 세금으로 하고 있는데, 이 자그마한 부스를 보려면 9000원을 내야한다는 압박.. 에휴.. 사실 저는 자하 하디드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고 있는 건축가이긴 하지만.. 저 같은 '아직은 일반인'의 시각으론.. 너무 위화감..이 든다고 해야할까요.. 자하하디드를 제대로 느끼려면 공부를 엄청 많이 해야겠죠..그렇지만 건축의 형태는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인에게 인정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지금 생각이, 에펠탑이 지어질 때, 그걸 반대하던 사람들의 생각정도일까 생각은 합니다만.... 아무튼.. 동대문에 지어지고 있는 그녀의 작품이 도시에 어떻게 녹아들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자.. 결론을 내겠습니다.


    1. 관람 동선이 엉망입니다. 
    -단순히 제가 처음에 실망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관람을 하며 이거 뭔가 잘못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주경기장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애초에 전시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진 건물이기 때문에(여기서 하자고 한 사람들 뭥미입니다 솔직히, 그냥 코엑스에서 하지... 그렇게 이슈를 만들고 싶었나) 제대로된 동선을 만들기가 어려운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도를 들고 다니면서도 몇 번이나 길을 잃고,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갈 계단을 찾아 헤매고, 거대한 구조물이 트랙을 막아 사람들이 귀퉁이에 있는 작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해야 움직일 수 있는건 확실히 커다란 문제입니다.


    2. 전시 건물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은, 한국 근대건축의 거장이신 김수근 선생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이 건물에 전시를 하겠다고 할 때, 전 긴가민가 하면서도 상당히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몰릴테니, 전시가 건물에 어떤식으로 녹아들지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습니다. 그런데, 디자인 전시를 위한 어떤 디자인도, 건물을 생각하고 있지 않더군요.
    단적인 예로 앞에서도 말했던 플라스틱병 데코레이션을 봅시다.
    내부에서 본 사진입니다. 김수근 선생의 인생이 녹아 있는 두 기둥 사이에 플라스틱 병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습니다. 정말 뭥미입니다. 뭥미. 차라리 그.. 서울색으로 염색한 천 같은걸 걸어 놓든지, 이런식으로 하니까 보기도 안 좋을 뿐더러, 외풍이 죄다 안으로 들어와서 관람객들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립니다.


    3. 서울시가 그렇게 말하는 디자인이란 과연 무엇인가.
    -오세훈 시장이 서울 시장이 된 후로, 갑자기 사람들이 디자인을 외칩니다. 저는 나름대로 디자인 관련 업종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이러한 흐름이 적어도 제 앞날에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요즘 일어나는 디자인 정책들은 디자인이 아니라, 디자인이란 말로 포장한 개발과 소비를 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디자인올림픽은 그러한 서울시의 입장을 재확인 시켜주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올림픽은 겉으로는 디자인을 외칩니다만, 사실은 디자인에 대해 제대로된 정의조차 내리지 않았습니다. Design is Air... 이딴 추상적인 말만 지껄이면서 평소에 디자인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더욱 혼란을 줍니다.

    디자인은, 전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상하게 휘어진 플라스틱 의자라든지, 약간 특이하게 잘라 놓고 10000원에 파는 수첩이라든지.. 이런건 절대 디자인이 아닙니다. 이런건 오히려 예술이나 상술에 가깝죠. 디자인은 단순히, 인간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도와주고, 때때로 감성을 자극해 삶에 활력소가 되주는 생활도구일 뿐입니다. 디자인은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곳에서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칫솔의 아름다운 곡선을 보세요. 사람들이 이를 더 효과적으로 닦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칫솔의 곡선이 바로 디자인입니다. 디자인을 이렇게 대규모로 전시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우스꽝스럽죠.
  
   그런데 제가 오늘 본 이런 것들..
  중복된 표지판이라든가..
    사람이 눈으로 절대 확인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한 작품 안내문..

    이런건 정말 최악의 디자인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이런 예들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한 마디로, 천박했습니다. 사소한 데에서 전체를 알 수 있는 법이지요. 이런 전시를 기획한 높으신 분들이, 과연 디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참 궁금합니다.


    흠.. 오랜만에 글을 길게 썼네요..

    뭐 말은 이렇게 했지만 한 번 가볼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생각도 해볼겸.. 특히 디자인 관련해서 공부하시는 분들은 전시 끝나기 전에 한 번 가보시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볼 것은 많으니까요.. 자하하디드 특별전을 안 보면 무료로 갈 수 있습니다.


ps1. 너무나도 주관적인 글입니다. 게다가 글이 강하게 써졌네요.
ps2. 이화여대 ECC인가 그 골짜기 ..의 모델을 봤는데, 중간중간에 대각선 다리가 놓여져 있더군요.. 제가 거길 갔을 때 그런 다리를 본 기억은 없는데.. ECC가 아직 다 지어지지 않은건가요?? 흠.. 다리를 놓으면 사용자들이 편하긴 하겠으나 골짜기 느낌이 많이 줄어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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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와 세상을 연결합니다. : 2008년 내 이글루 결산 2008-12-30 19:35:32 #

    ... 세상을 연결합니다.가장먼길 (3회) / 나와 세상을 연결합니다.가장 많이 읽힌 글은 나홀로 홍콩 여행-1 입니다. 가장 대화가 활발했던 글은 서울 디자인 올림픽 참관기. 입니다. ( 덧글 9개 ) 내이글루에 가장 덧글을 많이 쓴 사람은 Ryuki매냐㉿ 입니다. 200자 원고자 5600장이라니 후덜덜이네.. ... more

덧글

  • Ryuki매냐㉿ 2008/10/26 22:19 # 답글

    제가 알기로는 원래 다리를 만들려 하다가 짓지 않은걸로 기억합니다

    그나저나 정말 허전하네요....;;이거 가야되나 살짝 걱정도 됩니다..워낙 기대치가 높은

    데 말이죠. 플라스틱...음..좀 후줄근합니다 그려..

  • 가므샤 2008/10/26 22:52 #

    가 보세요 ㅎㅎ
  • Anarore 2008/10/27 01:24 # 삭제 답글

    그래 앞으로 쭉 혼자 다녀라
  • 준휘 2008/10/27 11:59 # 답글

    전 다녀와서 나름대로 긍정적인 감상만 썼습니다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는데 그런 부분은 가므샤님의 글과 같은 곳에서 생겨났나 봅니다. 서울시의 디자인에 대한 견해와 안목을 볼 수 있는 참 좋은 전시였습니다. 디자인과 아트의 애매모호한 경계는 둘째 치고서라도요..ㅎㅎ
    이번 일을 거울삼아 다음에는 괜찮은 전시를 했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다음'이 없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 가므샤 2008/10/27 17:42 #

    흠.. 안 좋은 기억만 떠올리며 쓰다보니 글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네요...ㅜㅜ 제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하고 가긴 했습니다. 그리고 좋았던 부분도 많았어요.. 그 많은 가족들이 나들이하러 디자인전시를 보러 왔다니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 알콩이 2008/10/27 13:46 # 삭제 답글

    내년에도 개최되는 행사입니다..ㅎㅎ 아마도 내년엔 올해보다 조금 더 나아지겠지요?...^^
  • 가므샤 2008/10/27 17:47 #

    와아 그런가요.. 내년에도 꼭 보러가야겠네요.. ㅎㅎ 이처럼 대규모의 전시를 진행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 것은 압니다만, 다음번 전시는 좀 더 세심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해봅니다.
  • 헣헣헣 2008/10/29 01:08 #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집이 운동장 근처라 주말마다 시끄럽습니다. 지하철역에 사람도 많지요.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주경기장을 살짝 보니 이미지컷과 실제가 어찌나 다르던지..
    멀리서도 보이는 듬성듬성한 플라스틱들이 왠지 안 어울리더군요.
    -_-그래서 아직까지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집건너에서 하는 거니 가줘야 할 것 같아요.
  • 가므샤 2008/10/29 02:50 #

    하하..이웃이신가보네요.. 반갑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있으시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예요..
    사람마다 느끼는게 다르니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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